인공지능/AI 역사

AI 연구가 무너졌던 이유: 퍼셉트론 충격부터 철학 전쟁까지

wooyu. 2025. 12. 1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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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의 인공지능 연구는 여러 방면에서 큰 충격과 혼란을 겪었다. 이 시기에는 단순히 기술의 한계뿐 아니라, 연구 방법에 대한 논쟁, 철학적인 비판, 학계 내부 갈등까지 겹쳐져 AI의 침체가 더 깊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 중 하나는 퍼셉트론의 붕괴였다. 퍼셉트론은 뉴럴 네트워크의 초기 형태로, 컴퓨터가 데이터에서 패턴을 스스로 학습하도록 만드는 기술이었다. 당시에 많은 연구자들은 퍼셉트론이 언젠가 사람처럼 학습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언어까지 번역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퍼셉트론을 만든 프랭크 로젠블랫은 특히 낙관적이었다. 그는 퍼셉트론의 가능성을 매우 높게 평가했고, 언젠가 인간의 지능 일부를 따라잡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1969년, 마빈 민스키와 시모어 페퍼트가 공동 집필한 《퍼셉트론》이라는 책이 발표되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뒤집혔다. 이 책은 퍼셉트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하게 분석했고, 특히 단층 퍼셉트론이 XOR 같은 단순한 문제조차 해결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한계를 밝혔다. 이는 “퍼셉트론이 생각보다 훨씬 무능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과 같았다.

이 책의 영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다. 그 결과, 1970년대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뉴럴 네트워크 연구를 아예 포기했다. AI 연구 자금 역시 상징 추론이나 전문가 시스템 같은 다른 분야로 쏠렸고, 퍼셉트론은 완전히 연구 현장에서 사라지다시피 했다. 로젠블랫 본인은 책이 출판된 직후 안타깝게도 보트 사고로 사망해 이 비판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른 뒤 뉴럴 네트워크는 다시 부활했지만, 당시에는 “뉴럴망은 끝났다”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 시기 AI 연구는 철학적인 공격도 받았다. 몇몇 철학자들은 기계가 인간의 사고를 흉내낼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존 루커스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근거로 “기계는 인간의 사고 능력과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결코 인간처럼 사고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휴버트 드레이퍼스는 더욱 강하게 비판하며, 인간의 사고는 논리적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 몸의 감각, 직관에 기반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AI 연구가 이러한 인간의 특성을 절대 모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논쟁에 더해 1980년 존 설이 제시한 “중국어 방(Chinese Room)” 사고실험은 AI가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설은 사람이 중국어를 모르는 상태에서도 단순히 규칙에 따라 기호를 조작하면 중국어로 대답할 수 있지만, 이는 이해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논리를 통해 그는 “컴퓨터는 기호를 다룰 수 있지만,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한다”라고 말하며 강하게 반론을 제기했다.

비록 AI 연구자들은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고 “오해에서 비롯된 주장”이라고 반박했지만, 당시의 AI는 실제로 언어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철학적 비판은 AI 연구에 부정적인 이미지와 회의감을 더욱 키우는 역할을 했다.

한편, AI 연구자들 내부에서도 ‘깔끔이 vs 지저분이’ 논쟁이 일어났다. ‘깔끔이’는 주로 논리 기반 AI 연구자들로, 기계를 정확하고 엄격한 규칙에 따라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존 매카시는 논리를 활용해 지식을 표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을 추구했다. 그는 “기계가 인간처럼 생각할 필요는 없다. 문제를 해결하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지저분이’라 불린 연구자들—마빈 민스키, 로저 섕크 같은 인물들—은 인간이 실제로 문제를 해결할 때 논리 규칙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사람은 상황을 경험으로 이해하고, 불완전한 지식으로 추론하며, 감각에 기대어 판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AI도 인간처럼 ‘불완전하지만 유연한 구조’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스키는 “프레임”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인간의 상식적 추론 방식을 설명했다. 사람은 ‘새’라는 단어를 들으면 ‘난다’, ‘부리를 가진다’ 같은 상식적인 정보를 떠올린다. 물론 모든 새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상식적 연결은 사람의 사고 과정에서 매우 자연스럽다. 로저 섕크는 여기에 “스크립트”라는 개념을 도입해, 사람이 일상적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이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일련의 사건 흐름을 기억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문제는 이러한 ‘지저분한 지능’을 실제 프로그램으로 구현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었다. 상식은 방대하고, 예외는 너무 많으며, 인간의 사고 방식은 너무 불규칙적이었다. 그래서 ‘지저분이’ 접근은 이론적으로는 매력적이었지만 실용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컸다.

이처럼 뉴럴망 붕괴, 철학적 비판, 학계 내부 논쟁까지 겹치면서 AI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 자금 지원은 논리 기반 시스템 쪽으로 몰렸고, 많은 연구가 중단되었으며, 일부 연구소는 해체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가혹한 시기 속에서도 중요한 진전이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었다. 논리 프로그래밍 언어인 프롤로그가 발명되었고, 지식 구조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기 시작했다. 이 연구들은 1980년대 등장하는 ‘전문가 시스템’과 현대 AI의 기초가 되는 뉴럴망 부활의 기반이 되었다.

즉, 1970년대 후반은 AI가 좌절을 겪으며 방향을 잃은 시기였지만, 동시에 미래의 발전을 위한 중요한 문제점을 발견하고 새로운 기초를 다진 시기였다. 이 시기의 실패가 있었기에 이후의 AI는 더 현실적인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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