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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역사 6

깔끔이와 지저분이, 그리고 1980~90년대 AI 흐름

인공지능 연구는 1950년대에 ‘새로운 실험적 학문’이라는 이름을 달고 시작되었다. 당시 MIT의 존 매카시와 마빈 민스키, 카네기멜론 대학교의 앨런 뉴웰과 허버트 사이먼 같은 연구자들이 그 흐름의 중심에 있었다. 이들은 모두 1956년에 열린 유명한 ‘다트머스 회의’에도 참여했는데, 이 회의는 인공지능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역사적인 순간으로 평가된다. 당시 연구자들은 언젠가 인간처럼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고 기대했고, 이 아이디어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초기 인공지능 연구는 방향에 따라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연구자들은 이 둘을 ‘깔끔이(Neats)’와 ‘지저분이(Scruffies)’라고 불렀다. 깔끔이는 논리적 규칙, 수학적 구조, 명확하게 정의된..

1993년 이후 인공지능의 재도약: 성공, 변화, 그리고 지금의 AI까지

1993년 이후의 인공지능 역사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변화와 성장을 이루어냈다. 인공지능 연구는 1950년대부터 시작되었지만, 여러 차례의 기대와 실망, 그리고 두 번의 AI 겨울을 겪으며 예상보다 더디게 발전했다. 많은 연구자들이 인간처럼 생각하고 대화하는 지능형 기계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었지만, 기술적 한계와 불확실성 때문에 그 목표는 오랫동안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AI의 연구 철학은 점차 현실적인 방향으로 전환되었고, 이 변화가 이후의 눈부신 발전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되었다.당시 연구자들은 인간 수준의 지능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잠시 내려놓고, 작고 구체적인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 접근은 복잡한 사고 구조를 흉내 내려는 시도..

두 번째 AI 겨울: 왜 인공지능 연구가 한동안 멈춰섰을까?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인공지능 연구는 큰 어려움에 부딪혔다. 이 시기는 흔히 ‘두 번째 AI 겨울’이라고 불렸으며, 많은 연구자와 기업이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린 시기였다. 그 이유는 당시의 AI 기술이 기대했던 만큼 빠르게 발전하지 못했고, 투자 대비 성과가 부족하다는 판단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는 특히 경제 전반에 거품이 끼어 있었고, 인공지능 역시 그 흐름 속에서 지나치게 큰 기대를 받았다가 한꺼번에 실망을 안겨준 분야였다.이 시기의 붕괴는 정부 기관과 투자자들이 “AI는 비판은 많았지만 그래도 계속 발전해 왔다”라고 믿었던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술적 한계가 분명했고, 빠르게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로봇 공학 연구..

AI 연구가 무너졌던 이유: 퍼셉트론 충격부터 철학 전쟁까지

1970년대 후반의 인공지능 연구는 여러 방면에서 큰 충격과 혼란을 겪었다. 이 시기에는 단순히 기술의 한계뿐 아니라, 연구 방법에 대한 논쟁, 철학적인 비판, 학계 내부 갈등까지 겹쳐져 AI의 침체가 더 깊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 중 하나는 퍼셉트론의 붕괴였다. 퍼셉트론은 뉴럴 네트워크의 초기 형태로, 컴퓨터가 데이터에서 패턴을 스스로 학습하도록 만드는 기술이었다. 당시에 많은 연구자들은 퍼셉트론이 언젠가 사람처럼 학습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언어까지 번역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퍼셉트론을 만든 프랭크 로젠블랫은 특히 낙관적이었다. 그는 퍼셉트론의 가능성을 매우 높게 평가했고, 언젠가 인간의 지능 일부를 따라잡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1969년, 마빈 민스키와 시모어 페퍼..

AI의 첫 번째 좌절기: 왜 1970년대는 "AI 암흑기"가 되었을까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공지능 연구는 큰 기대와 함께 시작되었지만 곧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당시 연구자들은 인공지능이 곧 인간처럼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으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야심 차게 진행했다. 그러나 실제 연구 결과는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연구자들의 예측은 지나치게 낙관적이었고,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자 자금 제공자들은 하나둘씩 등을 돌렸다. 이 시기의 실망과 혼란은 결국 “AI의 첫 번째 암흑기”라 불리게 되었다.AI가 이 시기에 위기를 맞이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기술적 한계였다. 1970년대 초의 컴퓨터는 지금과 비교하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느렸고, 메모리 용량 또한 매우 부족했다. 예를 들어 자연어 처리 실험으로 유명..

AI의 황금기, 그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1956년, ‘다트머스 회의’라는 인공지능 역사에서 중요한 행사가 열렸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기계도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움직임은 인공지능 분야가 빠르게 성장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1956년부터 1974년까지는 흔히 인공지능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시기이며, 이 기간에는 지금 기준으로 보아도 놀라운 연구 성과들이 잇달아 등장했다. 당시 만들어진 여러 프로그램들은 대수학 문제를 해결하고, 기하학 정리를 증명하며, 영어 문장을 분석하고 학습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기술 발전을 본 사람들은 “곧 20년 안에 완전한 인공지능이 등장할 것이다”라고 기대했고, 실제로 몇몇 연구자들은 학회나 인터뷰에서 “머지않아 컴퓨터가 사람처럼 생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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